하마사키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浜崎伝統的建造物群保存地区

에도 시대 하기의 경제적 부흥을 뒷받침한 항구마을

하마사키는 에도 시대(1603~1867) 초엽의 하기 조카마치(성하도시)의 주요 항구였습니다. 마쓰모토 강이 일본해로 합류하는 삼각주의 북동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모리 가문의 지배하에 하기가 조슈번의 중심 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하마사키도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마사키는 상업의 중심지인 오사카에서 세토 내해, 혼슈와 규슈 사이의 간몬 해협을 거쳐 일본해 연안을 홋카이도까지 왕복하는 상선인 기타마에부네의 중요한 기항지였습니다. 기타마에부네는 술과 소금, 그 밖의 상품을 배에 싣고 하마사키로 내항했습니다. 하기 지역의 재력은 상선과의 교역과 함께 지역의 풍요로운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어업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이르러 하마사키에서는 수산가공업이 급성장하면서, 항구 주변 지역은 하기의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마사키는 지금도 전갱이와 창오징어, 옥돔 등이 유명합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항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에 공습을 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의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마사키의 경제력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전후 재건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하기를 떠나갔습니다. 20세기 말엽에 접어들자, 하마사키 건축물의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가치를 재검토하게 되었고, 1998년에 거리 보존을 위한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2001년에는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는 100개가 넘는 건물이 역사 지구의 일부로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중 44채는 에도 시대 이전(1868년 이전)에 지어졌습니다. 건물 대부분은 보존 상태가 뛰어나 지금도 상당수의 건물은 실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근대적인 개발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하마사키는 일본의 건축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하기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하마사키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건조물 중 대부분은 지역의 대로인 혼마치스지를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마을의 중심이었던 하마사키 다이칸쇼(막부의 직할령을 관리하는 관청)는 1720년부터 1740년 사이에 제작된 하기 조카마치 지도에 따르면 드물게 바다에 면해 있는 장소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다이칸(대관, 막부의 직할령을 관리하는 관청의 관리)이 관할하는 ‘일곱 해변과 일곱 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혼마치스지의 거리 풍경은 해발이 높은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어 ‘후키아게’(‘바람이 불어 오르다’는 뜻)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하마사키는 대부분이 19세기에 들어 실시된 매립 공사로 조성된 토지입니다. 옛 하기번 선창은 석조에 기와를 얹은 창고로 일본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물로 과거에는 바다와 면해 있었지만, 바다를 매립하면서 주변이 육지화됨에 따라 지금은 주택지에 인접해 있습니다.

하마사키의 역사적인 건조물 중 대부분은 지금까지 실제 사람이 생활하고 있거나 비교적 최근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야마무라 가문, 야마나카 가문, 후지이 가문, 스코 가문, 사이토 가문, 다나카 가문의 주택들이 이에 해당하며, 야마무라 가문 옛 주택에서는 관광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메야 시치베이 옛 주택의 주인이었던 우메야 시치베이는 막부 말기의 상인으로, 목숨을 걸고 소총 천 자루를 상하이에서 조슈번으로 들여왔으며, 한편으로는 교토의 고보리 엔슈류의 다도를 보급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한국어 해설문은 관광청의 2024년도 ‘지역 관광자원의 다국어 해설 정비지원사업’을 통해 한국어 원어민의 편집 및 번역을 거쳐 작성되었습니다.)

기본 정보

요금 무료
교통 ‘오후나구라이리구치’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3분(하기 순환 마루 버스 동쪽 코스)
전화번호 0838-22-0133(옛 야마무라 가문 주택)
주소 하기시 하마사키 77(옛 야마무라 가문 주택, 옛 야마나카 가문 주택)
영업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옛 야마무라 가문 주택/수요일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