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묘 모리 테루모토와 그의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
하기 조카마치(성하도시), 호리우치 지구의 녹음이 우거진 곳에 위치한 덴주인 묘소는 하기 성을 축성한 번주 모리 데루모토(1553~1625)와 미나미노오카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그의 아내 세이코인이 영면에 든 장소입니다. 이곳은 일찍이 데루모토가 말년을 보내면서 은거했던 장소로, 덴주인은 모리 데루모토의 시호(諡號)입니다. 묘소에는 데루모토의 가신이자 주군을 따라 순절한 나가이 모토후사가 함께 묻혀 있습니다.
모리 모토나리(1497~1571)의 손자였던 데루모토는 모리 가문의 후계자이기도 했습니다. 1598년에 데루모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1593~1615)가 성년이 될 때까지 나라를 다스리는 5인의 섭정 중 한 사람으로 뽑혔습니다. 마찬가지로 섭정 중 한 사람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권력을 잡기 시작하자, 데루모토는 히데요리의 편에 섰습니다. 대군을 이끌고 있었던 데루모토는 히데요리와 이에야스의 군대가 충돌을 일으켰던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오사카 성에 농성하면서 히데요리의 승리를 방해했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를 적대시했다는 벌로, 데루모토는 영지의 대부분을 빼앗기고 히로시마에서 하기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정계에서 은퇴한 후에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다이쇼인 절이나 도코지 절 등 하기에 있는 다른 모리 가문의 묘소에 비해 덴주인 묘소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덴주인 묘소는 한때 절이었으나, 1869년에 폐사되었습니다. 데루모토와 부인의 묘는 돌기둥의 울타리로 둘러싼 중앙에 오륜탑으로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입구에는 석조 도리이가 배치되어 있으며, 64m 길이의 참배길에는 석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한국어 해설문은 관광청의 2024년도 ‘지역 관광자원의 다국어 해설 정비지원사업’을 통해 한국어 원어민의 편집 및 번역을 거쳐 작성되었습니다.)
기본 정보
교통 | 하기 성터 남동쪽 도보 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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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하기 호리우치 |
영업 시간 | 무료 방문 |